밀양의 독립투사 약산 김원봉 장군 서훈과 관련하여(제209회 임시회 제1차 본회의)

작성일
2019-04-22
작성자
이현우의원
조회수 :
857
밀양의 독립투사 약산 김원봉 장군 서훈과 관련하여

존경하는 밀양시민 여러분, 김상득 의장님과 선배, 동료 의원
여러분. 박일호 시장님을 비롯한 관계 공무원 여러분.
밀양시 의회 이현우 의원입니다.

저는 오늘 뜻깊은 의열단 창단 100주년을 맞아 독립투사 약산 김원봉장군 서훈과 관련하여 5분 자유발언을 하고자 합니다.

자랑스러운 ‘밀양 사람’ 김원봉 장군은 백범 김구선생과 함께 1930년대 이후 중국 내 독립운동의 양대 산맥으로 불렸습니다.

의열단장, 조선의용대장, 민족혁명당 총서기, 대한민국 임시정부 군무부장직 등을 역임하며 평생을 조국의 독립을 위해 살았던 명실상부한 대한민국 항일운동사 최고의 영웅입니다.

3.1운동 정신을 계승한 대한민국 임시정부에서 김원봉 장군은 백범 김구 선생보다 현상금이 컸던 유일한 인물입니다. 지금 가치로 무려 320억 원이라는 현상금이 걸릴 만큼 일제의 간담을 서늘하게 했던 의열 독립운동에 중심에 섰던 분입니다.

조선총독부 폭탄 의거의 주인공 김익상 의사, 동약척식주식회사와 석산은행에 폭탄을 투척한 나석주 의사, 일본 황궁 투탄 의거의 주인공김지섭 의사, 이들 외에도 40회의 무장 독립투쟁이 있었고 이의 전 과정을 지휘한 사람은 의열단 단장이었던 김원봉 장군이었습니다.
조국이 해방된 후 김원봉 장군이 고향 밀양을 방문했을 때, 무려 10만여 명의 인파가 모여 열렬히 환영을 했다고 하니 우리 밀양시민들이 김원봉장군에게 가지는 자긍심이 어떠했는지 짐작 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남한에서는 월북한 공산주의자로 낙인찍히고 북에서는 국제간첩으로 몰려 숙청된 비운의 독립운동가로 남아 있습니다.

그 동안 여러 차례 장군의 독립유공자 서훈이 추진되었지만 뜻을 이루지 못했고 지난 2015년부터 우리 밀양시민들을 중심으로 다시금 서훈 추진을 위한 100만인 서명운동이 이어졌으며 최근에는 장군에게 ‘건국훈장 대한민국장’을 서훈하자는 청와대 국민청원이 펼쳐지고 있습니다.

그럼에도 일각에서는 북한 정권 수립에 기여하고 6.25 전쟁을 방조했다는 사실을 들어 서훈에 반대하는 목소리도 있습니다.

그렇지만 다행스런 것은 최근에 이르러 장군의 행적에 대한 연구와 역사적 평가가 새롭게 재조명되면서 서훈을 추진할 수 있는 여건이 어느 때 보다 잘 마련되었다는 것입니다.

실제로 학자들은 사상적 지향 보다는 복잡한 사정으로 북으로 갈 수 밖에 없었고 북한 정권에 기여했으나 6.25 전쟁에 참여했다는 근거가 부족하다는 연구 결과를 발표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장군은 북한에 가서도 남북평화통일을 주장하다 숙청당했고 북한의 애국열사릉에도 묻히지 않았다는 것을 확인하고 있습니다.

이 같은 상황에서 우리 밀양시도 김원봉 장군과 윤세주 열사 생가지 일대를 의열기념공원으로 대대적으로 조성하여 의열독립운동의 성지로 만들어 가고 있습니다.

여기에서 한 걸음 더 나아가 3.1운동 100주년이자 의열단 창단 100주년을 맞은 뜻 깊은 올해 의열 독립운동의 고장으로서 그 위상을 드높이고 시민들의 자긍심을 회복할 수 있도록 밀양시가 지방자치단체 차원에서 김원봉 장군의 독립유공자 서훈을 강력하게 추진 할 것을 촉구 합니다.

아무쪼록 우리 시민들의 오랜 바람이자 숙원인 김원봉장군의 서훈이 하루 빨리 이루어질 수 있도록 각별한 노력을 기울여 주시길 당부드리면서 발언을 마치겠습니다. 경청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5분 자유발언(이현우의원-밀양의 독립투사 약산 김원봉 장군 서훈과 관련하여).hwp